'카메라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7.03.27 앙리 카르티에 - 브레쏭, 혹은 완벽한 우연의 순간들
- 2007.03.24 사진은 누가 발명했는가?-2
- 2007.03.24 조명1
앙리 카르티에 - 브레쏭, 혹은 완벽한 우연의 순간들
카메라이야기 2007. 3. 27. 18:24

그는 이후 신문사와 화보잡지사의 의뢰에 응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진을 찍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사진과 영화를 담당하는 육군하사로 근무하다가 그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두 번에 걸쳐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세 번째에 성공하여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활동을 도왔다. 이러한 인생의 유위전변은 뉴욕 현대미술관 사진부의 큐레이터, 뷰먼트 뉴홀의 오해를 부르게 된다. 뉴홀은 그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무위로 끝나자, 독일군의 포로였던 카르티에-브레쏭이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그의 ‘유작(遺作)’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세이무어(David Seymour)의 주선으로 뷰먼트 뉴홀을 접촉하게 된 카르티에-브레쏭은 「하퍼스 바자 Harp-
er's Bazaar」가 의뢰한 작업을 행할 겸 뉴욕에서 1년간 체류하면서, 1947년, 300점의 작품을 전시할 개인전을 준비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그는 뷰먼트 뉴홀과 친분을 쌓았고, 뉴홀은 카르티에-브레쏭의 사진작업 방식을 숙지하게 되었다. 뉴홀이 「Popular Photography」의 1947년 1월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그 당시 카르티에-브레쏭은 밝기 f.1.5의 콘탁스(Contax) 렌즈를 라이카 카메라에 장착해서 사용하기를 좋아했다. 싱글 렌즈 리플렉스 카메라와는 달리,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뷰 파인더 윈도우를 통해 피사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레인지 파인더(range finder)식 라이카는, 촬영 순간에 완벽한 사진을 기획하는 카르티에-브레쏭의 작업방식에 정확히 부합했다.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에게, 셔터를 누르는 ‘결정적 순간’에 어둠의 공백을 만드는 리플렉스 카메라는 적합하지 않았다. 카르티에-브레쏭에게 있어서 ‘결정적 순간’은 피사체의 표정, 작가의 의도, 주변상황이 사진 프레임 속에서 완벽하게 구성되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사진작가의 전 능력이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따라서 그는 촬영 이후의 암실작업을 작가의 의도, 감성이 개입될 수 없는 상황, 피사체의 조건을 수정, 보완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 작가의 관찰, 감정이입, 상황판단은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것으로 끝난다고 그는 단정했다.
이러한 그의 사진에 대한 견해는 그의 사진 스타일을 결정했다. ‘결정적 순간’을 도모하는 촬영의 순간을 신성화하는 그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생성되는 네거티브 이미지에 절대적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가 보기에 ‘결정적 순간’을 담고 있는 네거티브 이미지에서 무엇인가를 빼고 보탠다는 것은 ‘결정적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행위다. 따라서 네거티브 이미지를 절단하면서 재구성하는 트리밍(trimming)은 그의 사진 원칙에서 배제된다. 네거티브 이미지는 가감 없이 인화되어야 한다. 카르티에 - 브레쏭에 대한 뉴홀의 말의 들어보자.
“현대미술관에서 곧 있을 개인전 사진들의 거의 대부분은 네거티브 이미지 전체를 인화한 것이다. 인화 구성에 있어서 본질적인 영역은 프레임의 맨 끝 가장자리까지이다.”
피사체의 상황, 표정, 움직임에 작가의 관점, 구성감각을 투사하고, 작가의 의도에 피사체가 수렴되는 ‘결정적 순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관찰할 수 없는 우발적 상황, 작가의 시야를 벗어나는 우연성은 피해야 한다. 사진은 카메라의 눈으로 발견한 현실이 아니라, 작가가 바라본 현실의 포착이다. 간단히 말해, 사진의 주체는 작가이지, 결코 카메라가 아니다. 뉴홀의 카르티에-브레쏭에 대한 해설을 또 다시 인용하면, “그는 카메라를 통해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그의 카메라는 그의 시선이 찾아낸 것을 기록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거의 예측할 수 없는 직접적인 플래시 광을 싫어한다. 피사체에 보조조명을 써야만 촬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그는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백열 텅스텐 광을 선호한다.” 그의 시선에 포착되어, 그의 구성에 들어오지 않는 우연은, 카르티에-브레쏭에게 있어서는 예술적 실패는 아닐지라도, ‘결정적 순간’에 집중하지 못한 일종의 실수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의 카르티에-브레쏭은 194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미국의 스냅 사진작가들과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위지(Weegee)가 되었건, 리젯 모델 (Lisette Model)이 되었건, 더 나아가 윌리암 클라인(William Klein)이 되었건,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되었건 미국의 거리사진 작가들은 작가의 미학적 감성과 의지에 종속된 장면보다는, 카메라가 우발적으로 포착하고 드러내는 현실의 양상을 애호했다. 촬영 당시 작가가 보지 못했던 세부양상, 혹은 노출의 과부족, 흔들림 현상에 의해 작가도 예측할 수 없었던 현실이 폭로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렸다. 그들은 절제된 구성, 기하학적 구도가 완성되는 최상의 시점을 포기하고, 사진의 우연성, 사진의 자동생성에 기대어 작업을 행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카메라는,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언급한 영화 카메라처럼, “의식적인 인간행동 대신 무의식적인 인간행동을 포착하고 (...) 우리에게 무의식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열어 보인다. 마치 정신분석이 무의식적 충동의 경험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반면 카르티에-브레쏭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현실의 무질서를 정리하고, 우발적 상황을 통제하고, 그것들에 미학적 의미작용을 부여하는 방책이었다. 완벽에 가까운 조형감각, 예리한 세부관찰을 덧없이 변화하는 현실만큼 빠르게 수용하는 도구였다. 순간의 우연을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우연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이었다. 그 예를 위에서 인용한 사진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도 이 사진을 특징짓는 것은 짝을 이룬 대칭구조이다. 우연의 일치처럼 사진의 중요한 구성요소들은 쌍을 이루며 나타난다. 맨 위의 석조 난간은 대칭을 이루면서 반복되며, 그 아래 여인상주(女人像柱) 역시 쌍둥이처럼 서있다. 처마 밑 문짝도 색깔은 다르지만 대칭을 이루며 반복되고, 그곳을 지나는 여인들도 동일한 걸음걸이, 엇비슷한 얼굴 그리고 복장을 반복하면서 대칭을 이룬다. 그리고 왼쪽 가장자리의 대문은 열려진 부분과 다시 대칭을 이룬다.
사실 아테네의 한 오래된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대칭구조는 카르티에-브레쏭이 모색하는 ‘결정적 순간’일 수 없다. 아테네의 한 거리에 그것은 언제나 그렇게 있기 때문이다. 대칭구조를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것은 그곳을 우연히 지나가는 용모가 흡사한 두 여인이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대칭을 이룬 가게문을 배경으로 두 여인이 지나가는 그 순간을 거의 정면의 위치에서 사진작가가 포착했다는 사실에서 ‘결정적 순간’은 태어난다. 사진의 대상과 작가의 시선이 우연처럼 만나는 이 완벽한 순간에, 이 허름한 거리는 그리스의 아테네에 대해, 삶에 대해 언술 언어로 명확히 확정할 수 없는 여러 의미들을 발설한다.
회칠이 벗겨지고 코니스(cornice)가 심하게 깨어진 건물은 과거의 영광과 부귀가 유적의 자취로만 남은 아테네를 의미한다. ‘영원한 미’를 추구했던 그리스문명은 여인상주가 머리에 이고 있는 코니스가 보여주듯이, 머지않아 허물어질 운명에 처해있다. 이렇게 회복할 수 없는 노쇠의 징후를 그곳을 지나는 여인들이 반복한다. 그녀들의 무거운 몸과 활력을 잃은 걸음걸이, 상복처럼 어두운 복장은 노쇠한 그리스를 또다시 표상한다.
이 사진의 의미작용은 그리스의 과거와 현실의 표상작용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생물학적 시간을 아울러 보여준다. 영원한 젊음을 구가하는 여인상주는 시간의 파괴작용에 쇠진하여 저 늙은 여인들의 무거운 몸으로 추락한 듯 보인다. 영원 불변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려 했던 그리스 문명이 세월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몰락했듯이, 결코 시들지 않을 듯한 젊음을 간직한 여인상주 역시 시간과 함께 퇴색한 것이다. 따라서 이 거리사진은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한 변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연의 순간 속에 존재하는 형상들에게서 이처럼 의미론적 혹은 형태론적 유사성 혹은 대립을 발견해내는 양상은 분명 카르티에-브레쏭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러나 거리의 일상을 순간적으로 절묘하게 포착하는 사진은 카르티에-브레쏭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헝가리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 esz)는 카르티에-브레쏭에 앞서서 일상 현실의 순간들을 탁월한 조형감각으로 포착해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혹은 그에 뒤이어, 로베르 두와노(Robert Doisneau), 이지스(Izis), 빌리 로니스(Willy Ronis), 에두아르 부바 (Edouard Boubat)와 같은 유럽의 작가들은 일상의 거리에서 삶의 아이러니, 아이러니컬한 삶의 순간들을 절묘한 사진감각으로 채집했다. 그런데 거리의 삶, 서민들의 일상에 시선을 집중하는 양상은 사진만의 경향이 결코 아니었다. 1930년대 이후의 전반적인 유럽 문화는 거대하고 장중한 서사적 주제에서 벗어나, 비천하고 일상적 현실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웅대하고 영웅적인 소재를 멀리하고, 평범한 인간집단 속에 내재된 실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경향이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 예술계의 한 양상이었다. 네오 리얼리스트 계열의 영화들, 진부한 현실을 일상의 언어로 정제한 작크 프레베르 (Jacques Prevert)의 시학은 카르티에-브레쏭의 사진들과 더불어 일상의 미학을 구현하려는 유럽 문화의 한 경향을 대변했다.
카르티에 - 브레쏭이 관심을 가진 것은 비근한 일상의 현실뿐이 아니었다. 그는 1947년, 로버트 카파(Robert Capa), 데이비드 세이무어, 조지 로저(Georges Rodger)와 더불어 각각 400불씩을 공동 출자하여 조합의 성격을 띤 사진통신사 매그넘(Magnum)을 창설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서사적 현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1949년을 전후하여 그는 장개석 국민당 정권의 패퇴와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현장을 거의 1년에 걸쳐 취재했고, 1950년에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냉전체제의 긴장이 완화되는 1954년에는 서방 최초로 소련에 입국한 사진가가 되었다.
사진 저널리즘의 융성과 사진의 예술적 지위 향상으로 20세기의 위대한 예술가 군에 포함된 카르티에-브레쏭은 1970년 파리의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갖게 된다. <프랑스에서>라는 타이틀의 이 전시회는 1976년까지 프랑스 전국은 물론이고, 미국, 소련, 유고슬라비아, 호주, 일본 등을 순회하면서, 그의 예술적 재능을, 사진의 예술적 역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 군에 기입된 그는 1974년 이후 돌연 사진작업을 그만 두고 데생에 전념한다. 그의 예술적 신비를 더하는 알 수 없는 결단이지만, 이런 저런 추측은 가능하다.
우선 그의 “사진의 비밀은 바로 집중하는 데 있다”라고 공언한 것에 비추어, 나이와 함께 찾아온 ‘집중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의 ‘결정적 순간’은 빠른 순간에 확보하는 최상의 시점이 필수적이고 보면, 육체의 노쇠는 이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두 번째는 데생에 대한 그의 강박 관념적 애착 때문이다. 사실, 그의 가장 큰 기쁨은 데생화가로서 존경받는 일이라고 그는 고백한 터였다. 화가의 꿈을 접고 사진으로 전향한 청년 카르티에-브레쏭의 콤플렉스가 세기의 사진작가로 공인 받은 뒤에도 계속된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 사진이 발명되자 19세기 후반의 유럽에서는, 많은 실패한 화가들이 사진을 그들의 새로운 직업으로 삼고자 전향을 시도했었다.
여담으로 글을 맺기로 하자. 카르티에-브레쏭의 사진이 작년에 열린 한국 최초의 사진 경매시장에서 최고가에 낙찰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진을 수집하는 기관이나 개인이 그의 사진을 구입하기 전에 필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찍은 사진의 필름은 모두 파기했고, 종전 후에 찍은 필름은 모두 보관하고 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전에 찍은 사진의 프린트는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진은 그가 또 다시 필름을 파기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인화될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의 경매가는 당연히 전자가 아마도 몇 배는, 심지어는 수십 배는 더 높을 것이다. ●
글·최봉림(사진역사학 박사)
앙리 카르티에-브레쏭, <아테네, 그리스>, 1953, 작가소장.
'카메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은 누가 발명했는가?-2 (0) | 2007.03.24 |
---|---|
조명1 (0) | 2007.03.24 |
사진은 누가 발명했는가?-2
카메라이야기 2007. 3. 24. 01:37
사진은 누가 발명했는가?-2 | |
진정한 사진술의 발명가는 프랑스의 니에프스냐 다게르냐 하는 지난 호의 논의에 이어 이번호에는 영국이 사진술의 발명가로 주장하는 헨리 폭스 탈보트(W.H. Fox talbot)의 연구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탈보트는 ‘카로타입 (calatype;종이인 화법)’을 발명하여 명암이 반대로 나타나는 즉 음화와 양화로 구분되어 음화 한 장으로 많은 양의 사진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 그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과연 사진은 누기 발명했나?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편집자주> | |
![]() | |
왼쪽부터 니에프스, 탈보트, 다게르 | |
탈보트의 탈보타입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진술은 프랑스의 니에프스와 다게르에 의해 연구 발명되어 1839년 8월 19일 전세계에 공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영국사람들은 사진술의 진정한 발명자는 영국의 헨리 폭스 탈보트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와같이 영국에서 진정한 사진술의 발명자를 탈보트로 주장하게 된 이유는 사진술의 발명을 다게르 보다 탈보트가 먼저 했으며, 또한 탈보트의 ‘종이 인화법’은 명암이 반대로 나타나는 즉 음화와 양화로 되어 한 장의 음화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양화로 만들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사진술의 기초적인 원리가 되었다는데 있다. 다만 사진술의 발명 공표를 영국측이 프랑스보다 뒤늦게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야기 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사진술 발명 150주년을 맞으면서 전세계는 사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래서 본지에서는 창간호에 “사진은 누가 발명했는가?” 라는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사진과 함께 게재한바 있다. 앞으로 본지는 150년에 이르는 사진의 역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연재하여 독자의 사진역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사진의 종주국인 프랑스에서는 매스컴을 통해 사진술 발명 150주년을 맞아 지난날 사진술 발명에 따르는 두 사람의 공로자(니에프스와 다게르)중에서 격하된 니에프스의 공로를 격상시키려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영국에서도 세계 최초의 사진술 발명자를 자국의 폭스 탈보트라고 주장하는데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영국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인지하기 위하여 탈보트와 그의 ‘종이인화법’에 대해 소개하기로 한다. | |
![]() | |
탈보트, ‘열리 문’ 카로타입 자연의 연필, 1844년(왼쪽), 종이인화법(카로타입)을 발명한 영국인 윌리암 헨리 폭스 탈보트(1800~1877)(오른쪽) | |
탈보트의 착상 니에프스와 다게르 두 사람이 프랑스에서 사진술 발명연구에 열중하고 있던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도 같은 목적으로 연구를 하던 몇 사람의 과학자가 있었다. 이들 과학자들은 니에프스나 다게르가 사진술을 연구하고 있는 것을 전혀 몰랐으며 또한 프랑스에서도 영국에서의 사진술 연구를 모르고 있었다. 영국에서 연구를 하던 사람은 헨리 폭스 탈보트(1800~77)였다. 탈보트는 ‘카로타입’ 이라고 불리우는 종이인화법의 발명자로서 영국국민들은 사진술의 발명자를 탈보트로 못박고 있다. 탈보트는 영국의 명문대학 캠브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며 1831년에는 젊은 과학자로서 영국왕립협회회원으로 선임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1838년에는 자유당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했으나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사진술 발명에 대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의원이 된 해의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시도한 유럽여행 도중에 사진술 연구에 전념할 것을 결심했다. 탈보트는 당시의 사정을 그의 저서 ‘자연의 연필’(1844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33년 8월 초 어느날 나는 이태리의 아름다운 코모호반에서 영국의 윌리엄 하이드 워러스턴이 고안한 카메라 루시다를 사용하여 스케치를 하려고 했지만 마음먹은대로 되질 않았다. 이 카메라 루시다는 화가의 도구로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이는 영상에 대한 스케치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나는 몇 해를 걸쳐 실험에 온 방법을 재차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이 방법이란 ‘카메라 옵스큐러’를 사용해서 초점판이 되는 트래싱페이퍼에 대상물의 상(像)을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이 상은 마치 요정이 그린 그림처럼 순간적인 창작으로 삽시간에 소멸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어떤 영감이 떠올랐다. 만약 이 자연의 영상을 언제까지나 종이 위에 고정시켜 남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신비로은 일이겠는가!” | |
![]() | |
그림복사, 초상촬영, 일광에 의한 인화, 조각의 촬영 등을 보여준다. | |
![]() | |
탈보트, ‘창문의 종이그림’, 1835년 | |
![]() | |
탈보트, ‘아침식탁’ 광선화, 1840년 | |
탈보트는 유럽여행을 마치고 1834년 1월 영국에 돌아오자 즉시 종이 위에 감광성을 투여하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초산은을 재료로 실험을 했으나 감광성이 미약해서 별로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염화은을 사용해서 실험했다. 이 방법은 양질의 종이에다 염화나트륨(식염)의 용액을 바르고 그것이 건조되면, 초산은의 용액을 도포한다. 이때 두 화학물질의 반응으로 불용성(不溶性)이며 감광성이 있는 염화은은 종이의 섬유속에 침투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종이에 나뭇잎이나 레이스를 놓고 유리로 누른다. 종이는 나뭇잎이나 레이스로 가려진 부분 이외는 광선이 쪼여져 검게 되었다. 더욱 농도가 짙은 염화나트륨용액은 검게 변하는 속도가 늦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835년 2월에는 그것을 이용해서 정착작용(定着作用)의 방법을 고안했다. 탈보트는 이왁같은 연구를 토대로 카메라 옵스큐러에 의한 영상고정을 실험하기 시작했지만 감광성이 약해서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2인치의 초점거리를 가진 현미경 렌즈를 2인치 ½입방 크기의 소형카메라에 부착하고 거기에 1인치 크기의 사각 종이 네가티브를 넣고 여러곳에서 촬영을 시도했다. 노출시간은 약 30분이 소요되었고 모두 잘 찍혔다. 이때 찍은 한 장의 사진에 1835년이라는 연대의 사인이 기입되어 현재 런던의 과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후 탈보트는 약3년동안 사진술 연구를 중단하고 광파의 이론적 연구, 편광, 석회광에 대해 연구했으며 또한 고고학의 연구도 하면서 그것에 대한 저서도 펴냈다. 1839넌 1월 7일 프랑스 과학학사원에서 아라고박사가 다게르타입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뉴스를 전해 듣고 탈보트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다게르가 연구한 사진술의 방법이 자기의 방법과 동일한 것이라면 지금까지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크게 걱정했다고 한다. 탈보트는 자기의 발명이 다게르보다 앞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선취권을 확보하기 위해 런던의 왕립과학원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냈다. 그 사진은 ‘꽃과 나뭇잎’, ‘레이스의 모양’, ‘판화의 베니스 풍경’ 등으로 1835년 여름 카메라 옵스큐러를 사용해서 만든 것들이었다. 이 사진들은 1839년 1월 25일 왕립과학원에서 있었던 강연회 석상에서 유명한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마이켈 파르디박사(1791~1861년)에 의해 소개되었다. 탈보트는 자신이 연구한 사진술의 방법인 종이인화법을 '포토 제닉 드로잉 이라고 불렀다. 이 방법은 명암이 거꾸로 되어 나타난다. 실제의 어두운 부분은 밝고 광선을 받는 밝은 부분은 어둡게 된다. 이것을 복사하면 명암이 거꾸로 되어 정상적인 명암이 된다. 탈보트의 친구인 천문학자 죤 허셀은 이 명암의 어두운 부분은 네가티브, 밝은 부분을 포지티브로 명명했다. 즉 한 장의 네가티브를 가지고 몇장이든 포지티브로 만들 수 있으며 이 발명은 오늘날 사진술의 기초가 되는 셈이다. | |
![]() | |
1840년대로 추정되는 카로타입. 이 방법은 영국인 헨리 폭스 탈보트의 발명품이다. 이것 은 양화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음화이다. 이 카로타입에서 사진술의 발전 및 응용이 생겨났다. (단,다게르타입이 단일영상으로만 통용됐을 경우). 사진은 투명하게 나타난 종 이위에 음화(왼쪽) 음화에서 얻은 양화. 소금물에 담갔다가 질산은으로 인화했다.(오른쪽) | |
![]() | |
1840년의 영국 ‘Reading'지에 게재된 폭스 탈보트의 작업실 | |
탈보트는 다게르타입의 완성에 자극되어 자기의 프로세스에 대한 개량에 노력하였다. 1840년 9월에는 감광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다게르타입과 동일하게 단시간 노출과 현상이라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완성한 셈이다. 탈보트는 자기의 이 프로세스에 ‘카로타입(’카로‘는 아름답다는 의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후 친구의 권유에 의해 ‘탈보타입’ 이라고 고쳐 1841년 2월 영국에서 특허권을 획득했다. 프랑스정부가 다게르타입의 특허권을 개인에게 허용하지 않았던데 반해 영국정부에서는 탈보트에게 사진술 발명특허권을 개인의 권리로 귀속시켰다. 이로 인해서 영국에서는 당시 사진술에 대한 특허권 문제로 법정투쟁이 벌어지는 등 한때 시끄러웠다. | |
![]() | |
카로타입을 보고 있는 미국인 프리드릭 랑겐하이므 씨(왼쪽) 탈보트, 레이스를 감광지에 밀착노출시켜서 만든 광선화(오른쪽) | |
정착(定着)법의 발견 폭스 탈보트 이외에 영국에서 사진술 발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과학자는 여러명 있었지만 이 중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죤 허셀(1791~1871)이었다. 죤 허셀은 정착법(定着法)의 발견과 수은증감법의 발명, 청사진프로세스의 완성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포토그라프ㆍ포토그라피(寫眞)‘라는 용어를 창안했고 또한 포지티브, 네가티브라는 용어도 죤허셀이 최초로 쓰기 시작했다. 죤 허셀은 영국의 귀족 출신으로 물리ㆍ화학자로 큰 공을 세웠다. 그는 프랑스에서 다게르타입이 공표되자 그후 사진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죤 허셀이 사진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것은 ‘定着 ’법의 발견이었다. 그는 하이포가 염화은(鹽化銀)의 용제(溶劑)로서 적절하다는 사실을 1819년에 발표했다. 하이포에 의한 미감광염화은의 제거가 탈보타입에 가장 좋고 적합하다는 것을 탈보트에게 알려 주었다. 다게르도 처음에는 식염(食鹽)을 정착에 사용하다가 후에는 하이포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오늘날 까지 하이포는 정착제로 사진프로세스의 근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 |
![]() | |
니에프스가 첫 테스트를 위해 사용한 ‘black chamber' .사이드당 0.3cm를 측정하여 여러 기능을 관찰하기 위해 세 개의 작은 구멍을 뚫었다. Marquis d'lvory는 Chalons-sur-sorone에 있는 니에프스 박물관에 이것을 기증했다.(왼쪽) 다게르가 니에프스에게 ‘black chamber'를 정확히 1829년에 빌려 주었다. 크기는 16cm의 조리개를 가진 높이 36cm, 폭 35cm, 깊이 63cm의 목재상자는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없는 어연감광판(zine plate)으로 카바되었다.(오른쪽) | |
크로죤 프로세스 런던 과학박물관의 공식기록에는 ‘사진술의 아버지가’가 7명으로 되어 있다. 즉 니에프스, 다게르, 탈보트, 죤 허셀 그리고 코로죤시스템을 발명 발전시킨 스코트 아처, 리차드 마독스, B 리드 등 3명이다. 사진술 발명의 역사적인 가치측면에서 볼때 앞서 밝힌 네 명의 업적에 비하면 코로죤시스템을 발명하고 이를 발전시킨 세 사람의 업적은 약간 뒤지는 것을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니에프스의 헤리오그라피, 다게르타입, 또는 탈보타입 등 초기 사진술을 발전적으로 추진시키는데 이들의 역할과 공적은 결코 경시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7명의 ‘사진술의 아버지’는 런던 과학박물관의 공식적인 기록이지만 이외에도 2명의 선각자를 추가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모두 9명의 선각자들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사진을 발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어렵다. 만인이 납득하고 긍정할 수 있는 대답은 없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수학의 답을 구하는 것과 같은 방정식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대부분 사람들은 사진술의 발명자로는 프랑스의 다게르를 꼽고 있다. 특히 미국의 사진사가인 버먼드 뉴홀도 1839년 8월 19일 다게르타입의 공식발표를 사진술 발명의 날로 긍정하고 있다. | |
![]() | |
이 다게르타입(은판사진)은 파리에서 최초로 팔린 것 중 하나이다. 1839년 8월경의 것으로16×21cm의 감광판(plaque)으로 사진을 뽑는다. 이것엔 No. 6의 칭호가 붙어있고 제작자의 사인과 다게르의 보증이 있다, 광학기계상인 Lerebours가 만든 Simple 렌즈로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조리개는 장착되어 있지 않다. 발명이 알려지고 얼마 후 Lerebours는 자신의 다게르타입을 내세우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
'카메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리 카르티에 - 브레쏭, 혹은 완벽한 우연의 순간들 (0) | 2007.03.27 |
---|---|
조명1 (0) | 2007.03.24 |
사진(Photography)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빛으로 그린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빛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진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사진 촬영 시 빛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느냐에 따라서 전문 사진가와 아마추어 사진가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빛은 사진 촬영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점은 아날로그사진에서 디지털사진으로 변화한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빛의 활용방법에 있어서 아날로그사진에서는 감각과 경험이 필요했다면, 디지털사진에서는 수치화되고 과학화된 지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전문 사진가들은 필름을 처음 구입하면, 정확한 노출과 색상의 표현을 위해여러가지 테스트를 한다. 따라서, 디지털카메라의 빛에 대한 반응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노출과 색온도 테스트를 했다.
그 후, 강한 Specular 조명과 부드러운 Diffused 조명, 조명 비율, 배경 조명, 그리고 Lighting Patterns의 효과를 테스트했으며 실외 촬영에 쓰이는 조명의 효과도 테스트 했다.
1. 노출(Exposure)
모든 사진용 필름은 빛에 대한 반응의 정도를 나타내는 감도(ISO)가 표기돼 있지만 공장에서의 필름 생산 시의 환경과 보관상태 그리고 사진가의 노출계와 카메라의 상태에 따라 개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문 사진가들은 필름을 구입하면 자신의 여러가지 상황에 맞추어 감도 테스트를 하게 되는데 이것을 실제감도(Exposure Index) 테스트라고 한다.
한편, 모든 디지털카메라들도 빛에 대한 반응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기존 필름의 감도와 같은 수치(equivalent film ISO)로 표기하고 있다.
이미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보통 컬러 네거티브 필름은 관용도가 +3 stop에서 -1 stop까지 상당히 넓으나 디지털카메라는 그에 비해 상당히 좁으므로 노출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여러가지 소프트 웨어를 사용해 보정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과 동시에 하일라이트 부분과 섀도우 부분의 디테일에 손상을 가져오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2. 색온도(Color Temperature)
모든 광원은 전자파를 발산하며 이들 중의 일부는 400nm에서 700nm의 가시 파장 안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이 파장에 따라서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으로 나누어진다. 각 파장이 방출하는 전자파의 양은 광원에 따라서 분포도가 다르므로 모든 광원들은 제각기 부류에 따라서 다른 색온도를 가지게 된다. 이 색온도는 W.T. Kelvin(1824-1907)의 이름에서 명칭되어 캘빈도(K)로 표기되며 광원의 색온도가 높아질수록 방출되는 전자파의 파장은 짧아지므로 빛의 색은 파란색에 가까워진다. 이 색온도가 사진에서 중요한 이유는 컬러 필름들이 지정된 색온도를 가진 광원에서 최적의 컬러 묘사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광용 컬러필름은 색온도가 5500K에 맞춰져 있고, 텅스텐용 컬러 필름은 3200K에 맞춰져 있어 컬러필름을 사용할 때는 광원의 색온도에 맞는 필름을 사용하거나 색온도 보정(LB) 필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는 내장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간단히 보정할 수 있다.
3. Hard and Soft Light Sources
인물 전문 사진가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위해 광원의 색온도에 관계없이Hard Light(작은 반사갓을 사용한 강한 광원), Soft Light (Umbrellas나 Softboxes를 사용한 부드러운 광원), 그리고 Medium Light (Parabolic 반사갓과 같은 강한 광원과 부드러운 광원의 중간 정도의 광원) 등의 3가지 광원을 사용한다.
강한 광원은 분명하고 강한 그림자를 생성하므로 인물사진에 많이 사용되지는 않으나 주로 인물의 개성을 강조하는데 사용한다. 부드러운 광원은 부드러운 그림자를 생성해 인물의 단점을 보완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물 사진가들은 umbrellas 나 softboxes를 사용한 부드러운 광원을 사용해 인물의 단점을 보완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때때로 parabolic 반사갓과 같은 중간 정도의 광원을 사용해 인물의 개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4. 조명 비율(Lighting Ratios)
조명 비율은 일반적으로 하일라이트(Highlight) 부분과 섀도우(Shadow) 부분의 콘트라스트 비율을 말한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입사광식 노출계를 사용해 하일라이트 부분과 섀도우 부분의 밝기를 측정하는데, 측정된 콘트라스트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1:2, 1:3, 1:4, 1:5, 1:8과 같이 표기하며, 1 stop의 차이는 1:2의 비율, 1과 1/2 stop의 차이는 1:3의 비율, 2 stop의 차이는 1:4의 비율, 2와 1/2 stop의 차이는 1:5의 비율, 3 stop의 차이는 1:8의 비율, 4 stop의 차이는 1:16의 비율, 5 stop의 차이는 1:32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입사광식 노출계로 피사체를 측정한 하일라이트 부분의 빛의 밝기가 f8이고, 섀도우 부분의 밝기가 f4라고 가정한다면, 하일라이트 부분과 섀도 부분의 밝기는 2 stop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하일라이트 부분은 섀도우 부분 보다 네배 밝아 1:4의 비율이다.
그러면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데 가장 적절한 조명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대부분의 인물 사진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1:3의 조명 비율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테스트 해본 결과 출력된 디지털 이미지의 결과물이 다소 부드러워 보여 은염사진의 인물보다 인물의 얼굴이 더 넓어 보일 수 있는 우려가 있으므로 1:4의 조명 비율을 권한다.
5. 조명 방식(Lighting Patterns)
인물사진에 주로 사용하는 조명 방식(Lighting Patterns)에는 Split 조명, Paramount 조명, Loop 조명, 그리고 Rembrandt 조명 등 4가지 방식이 있다.
Split 조명은 인물의 강한 개성을 나타내고 얼굴의 질감을 강조하는 극적인 조명 방법으로 주 조명이 인물의 바로 옆에서 비추는 측광을 이용한 조명 방법이다. 주 조명은 Rembrandt 조명 보다 낮은 위치에서 인물을 비추고, 보조 조명은 카메라와 같은 위치이거나, 카메라의 바로 위에서 인물을 향하도록 한다. 이 Split 조명을 사용한 결과, 디지털 이미지는 은염 사진에 비해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이나, 디지털카메라의 부드러운 효과로 인해 은염 사진보다는 인물의 개성을 약간 둔화시킨다. 또한 하일라이트 부분의 디테일을 보기 힘들어 본인이 사용한 1:3의 조명 비율보다 강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Paramount 조명은 코 밑의 그림자가 코와 윗입술 중간 부분에 위치하는데 나비 모양의 그림자가 생기기 때문에 Butterfly 조명이라고도 하며, 주로 패션 촬영이나 글래머(glamour) 촬영 시 많이 사용하는 조명 방법이다. 주 조명이 피사체의 바로 앞에서 코와 45도 정도 위에 위치하고, 다른 조명 방법과는 다르게 보조 조명이 주 조명 뒤의 피사체와 같은 높이에 위치한다. 이 조명 방법은 인물의 광대뼈를 강조하고 피부의 질감을 줄여주며 좁은 얼굴형이나 계란형 얼굴과 보통의 얼굴형에 모두 적합하지만 얼굴이 넓어 보이기 때문에 사각형의 턱을 지닌 인물 촬영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조명 또한, 디지털 이미지가 은염 사진에 비해 좀더 부드러워 보인다. 보통 이 효과는 피사체의 얼굴을 더 넓어 보이게 해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지만 글래머를 촬영할 때 주로 사용하는 Paramount 조명에는 피사체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한다.
Loop 조명은 주 조명이 파라마운트 조명보다 낮은 위치에서 배경지 쪽으로 약간 이동해 피사체를 비추고 주 조명으로 인한 코 그림자의 끝부분이 코와 아래 입술 중간부분의 입술 바깥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Rembrandt 조명 방법이나 Split 조명 방법과는 다르게 주 조명의 하이라이트가 섀도우 부분의 눈에 들어와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조명 방법으로 인물의 얼굴 질감과 전체적인 얼굴의 형태를 줄여주며 얼굴을 넓게 보이게 하기 때문에 좁은 얼굴형이나 눈이 깊은 얼굴에 적합하다. 따라서 여성을 피사체로 한 촬영에서 주로 많이 쓰이는 조명 방법이지만 디지털 이미지의 섀도우 부분이 은염사진 보다는 다소 밝고 전체적인 이미지가 부드러워 피사체의 얼굴이 은염사진 보다 넓어 보인다.
Rembrandt 조명은 18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인 렘브란트가 주로 사용했던 조명 방법으로 매우 극적인 조명 방법이다. 조명 방법은 주 조명이 카메라를 향하는 얼굴 방향과 반대편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Loop 조명보다는 낮고 피사체 방향으로 치우치게 위치하고, 보조 조명은 카메라와 같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향하도록 한다. 섀도우 부분에 역삼각형 모양의 하일라이트가 생기는 것이 큰 특징이다. 주 조명이 측광에 가까워 인물 피부의 질감을 강조하기 때문에 거친 피부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인물의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기 때문에 좁고 긴 얼굴에는 적합하지 않고 넓은 얼굴에 적합하다. 따라서 남성을 촬영하거나 로우키(low-key)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주로 사용하고 있다.
6. 배경지 (Background)
배경지의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High-key(white), Medium-key(gray), 그리고 Low-key(black)의 3가지 배경지를 사용했다. High-key와 Medium-key의 배경지에는 Loop 조명을 1:4의 조명 비율로 촬영했으며, Low-key의 배경지에는 Rembrandt 조명을 1:8의 조명 비율로 촬영했다. 촬영 결과, 디지털 이미지는 순백색과 순흑색 부분의 디테일을 잃기 쉬우므로 인물의 옷의 디테일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7. Outdoor Portraiture
야외에서 인물을 촬영하는 것은 다양한 조명 상황으로 인해 실내에서 촬영하는 것 보다 조금은 조명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인 태양광과 반사되어 생기는 빛을 적절한 조절을 통해 충분히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조명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태양광으로 인한 조명을 더하거나 줄여주면서 조절한다. 빛을 줄여주는(subtractive) 조명 조절법은 검정색 두꺼운 종이, 나무, 그리고 벽과 같은 것을 이용해 빛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빛을 더해주는(additive) 조명 조절법은 반사판, 전자 플래시, 그리고 주변의 반사된 빛으로 인해 피사체에 빛을 더해주는 조절 방법이다. 그러나 태양광이 아주 밝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이 실내 촬영처럼 쉽지는 않다. 따라서 인물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구름이 약간 있는 흐린 날씨와 같은 태양광이 확산된 상황 아래에서 촬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필자는 야외에서의 실험을 위해 빛을 줄여주는 조명 조절법으로 대형 확산판을 사용했으며, 빛을 더해주는 조명 조절법으로는 은색과 금색의 반사판과 전자 플래시를 사용했다. 실험 결과, 필자는 이러한 조명 조절 방법들이 은염 사진과 같이 효과적으로 강한 콘트라스트를 줄여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 : 정성원 대표 / 제이미스튜디오
대부분의 전문 사진가들은 필름을 처음 구입하면, 정확한 노출과 색상의 표현을 위해여러가지 테스트를 한다. 따라서, 디지털카메라의 빛에 대한 반응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노출과 색온도 테스트를 했다.
그 후, 강한 Specular 조명과 부드러운 Diffused 조명, 조명 비율, 배경 조명, 그리고 Lighting Patterns의 효과를 테스트했으며 실외 촬영에 쓰이는 조명의 효과도 테스트 했다.
1. 노출(Exposure)
모든 사진용 필름은 빛에 대한 반응의 정도를 나타내는 감도(ISO)가 표기돼 있지만 공장에서의 필름 생산 시의 환경과 보관상태 그리고 사진가의 노출계와 카메라의 상태에 따라 개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문 사진가들은 필름을 구입하면 자신의 여러가지 상황에 맞추어 감도 테스트를 하게 되는데 이것을 실제감도(Exposure Index) 테스트라고 한다.
한편, 모든 디지털카메라들도 빛에 대한 반응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기존 필름의 감도와 같은 수치(equivalent film ISO)로 표기하고 있다.
이미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보통 컬러 네거티브 필름은 관용도가 +3 stop에서 -1 stop까지 상당히 넓으나 디지털카메라는 그에 비해 상당히 좁으므로 노출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여러가지 소프트 웨어를 사용해 보정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과 동시에 하일라이트 부분과 섀도우 부분의 디테일에 손상을 가져오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2. 색온도(Color Temperature)
모든 광원은 전자파를 발산하며 이들 중의 일부는 400nm에서 700nm의 가시 파장 안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이 파장에 따라서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으로 나누어진다. 각 파장이 방출하는 전자파의 양은 광원에 따라서 분포도가 다르므로 모든 광원들은 제각기 부류에 따라서 다른 색온도를 가지게 된다. 이 색온도는 W.T. Kelvin(1824-1907)의 이름에서 명칭되어 캘빈도(K)로 표기되며 광원의 색온도가 높아질수록 방출되는 전자파의 파장은 짧아지므로 빛의 색은 파란색에 가까워진다. 이 색온도가 사진에서 중요한 이유는 컬러 필름들이 지정된 색온도를 가진 광원에서 최적의 컬러 묘사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광용 컬러필름은 색온도가 5500K에 맞춰져 있고, 텅스텐용 컬러 필름은 3200K에 맞춰져 있어 컬러필름을 사용할 때는 광원의 색온도에 맞는 필름을 사용하거나 색온도 보정(LB) 필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는 내장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간단히 보정할 수 있다.
3. Hard and Soft Light Sources
인물 전문 사진가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위해 광원의 색온도에 관계없이Hard Light(작은 반사갓을 사용한 강한 광원), Soft Light (Umbrellas나 Softboxes를 사용한 부드러운 광원), 그리고 Medium Light (Parabolic 반사갓과 같은 강한 광원과 부드러운 광원의 중간 정도의 광원) 등의 3가지 광원을 사용한다.
강한 광원은 분명하고 강한 그림자를 생성하므로 인물사진에 많이 사용되지는 않으나 주로 인물의 개성을 강조하는데 사용한다. 부드러운 광원은 부드러운 그림자를 생성해 인물의 단점을 보완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물 사진가들은 umbrellas 나 softboxes를 사용한 부드러운 광원을 사용해 인물의 단점을 보완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때때로 parabolic 반사갓과 같은 중간 정도의 광원을 사용해 인물의 개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4. 조명 비율(Lighting Ratios)
조명 비율은 일반적으로 하일라이트(Highlight) 부분과 섀도우(Shadow) 부분의 콘트라스트 비율을 말한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입사광식 노출계를 사용해 하일라이트 부분과 섀도우 부분의 밝기를 측정하는데, 측정된 콘트라스트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1:2, 1:3, 1:4, 1:5, 1:8과 같이 표기하며, 1 stop의 차이는 1:2의 비율, 1과 1/2 stop의 차이는 1:3의 비율, 2 stop의 차이는 1:4의 비율, 2와 1/2 stop의 차이는 1:5의 비율, 3 stop의 차이는 1:8의 비율, 4 stop의 차이는 1:16의 비율, 5 stop의 차이는 1:32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입사광식 노출계로 피사체를 측정한 하일라이트 부분의 빛의 밝기가 f8이고, 섀도우 부분의 밝기가 f4라고 가정한다면, 하일라이트 부분과 섀도 부분의 밝기는 2 stop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하일라이트 부분은 섀도우 부분 보다 네배 밝아 1:4의 비율이다.
그러면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데 가장 적절한 조명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대부분의 인물 사진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1:3의 조명 비율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테스트 해본 결과 출력된 디지털 이미지의 결과물이 다소 부드러워 보여 은염사진의 인물보다 인물의 얼굴이 더 넓어 보일 수 있는 우려가 있으므로 1:4의 조명 비율을 권한다.
5. 조명 방식(Lighting Patterns)
인물사진에 주로 사용하는 조명 방식(Lighting Patterns)에는 Split 조명, Paramount 조명, Loop 조명, 그리고 Rembrandt 조명 등 4가지 방식이 있다.
Split 조명은 인물의 강한 개성을 나타내고 얼굴의 질감을 강조하는 극적인 조명 방법으로 주 조명이 인물의 바로 옆에서 비추는 측광을 이용한 조명 방법이다. 주 조명은 Rembrandt 조명 보다 낮은 위치에서 인물을 비추고, 보조 조명은 카메라와 같은 위치이거나, 카메라의 바로 위에서 인물을 향하도록 한다. 이 Split 조명을 사용한 결과, 디지털 이미지는 은염 사진에 비해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이나, 디지털카메라의 부드러운 효과로 인해 은염 사진보다는 인물의 개성을 약간 둔화시킨다. 또한 하일라이트 부분의 디테일을 보기 힘들어 본인이 사용한 1:3의 조명 비율보다 강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Paramount 조명은 코 밑의 그림자가 코와 윗입술 중간 부분에 위치하는데 나비 모양의 그림자가 생기기 때문에 Butterfly 조명이라고도 하며, 주로 패션 촬영이나 글래머(glamour) 촬영 시 많이 사용하는 조명 방법이다. 주 조명이 피사체의 바로 앞에서 코와 45도 정도 위에 위치하고, 다른 조명 방법과는 다르게 보조 조명이 주 조명 뒤의 피사체와 같은 높이에 위치한다. 이 조명 방법은 인물의 광대뼈를 강조하고 피부의 질감을 줄여주며 좁은 얼굴형이나 계란형 얼굴과 보통의 얼굴형에 모두 적합하지만 얼굴이 넓어 보이기 때문에 사각형의 턱을 지닌 인물 촬영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조명 또한, 디지털 이미지가 은염 사진에 비해 좀더 부드러워 보인다. 보통 이 효과는 피사체의 얼굴을 더 넓어 보이게 해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지만 글래머를 촬영할 때 주로 사용하는 Paramount 조명에는 피사체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한다.
Loop 조명은 주 조명이 파라마운트 조명보다 낮은 위치에서 배경지 쪽으로 약간 이동해 피사체를 비추고 주 조명으로 인한 코 그림자의 끝부분이 코와 아래 입술 중간부분의 입술 바깥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Rembrandt 조명 방법이나 Split 조명 방법과는 다르게 주 조명의 하이라이트가 섀도우 부분의 눈에 들어와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조명 방법으로 인물의 얼굴 질감과 전체적인 얼굴의 형태를 줄여주며 얼굴을 넓게 보이게 하기 때문에 좁은 얼굴형이나 눈이 깊은 얼굴에 적합하다. 따라서 여성을 피사체로 한 촬영에서 주로 많이 쓰이는 조명 방법이지만 디지털 이미지의 섀도우 부분이 은염사진 보다는 다소 밝고 전체적인 이미지가 부드러워 피사체의 얼굴이 은염사진 보다 넓어 보인다.
Rembrandt 조명은 18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인 렘브란트가 주로 사용했던 조명 방법으로 매우 극적인 조명 방법이다. 조명 방법은 주 조명이 카메라를 향하는 얼굴 방향과 반대편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Loop 조명보다는 낮고 피사체 방향으로 치우치게 위치하고, 보조 조명은 카메라와 같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향하도록 한다. 섀도우 부분에 역삼각형 모양의 하일라이트가 생기는 것이 큰 특징이다. 주 조명이 측광에 가까워 인물 피부의 질감을 강조하기 때문에 거친 피부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인물의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기 때문에 좁고 긴 얼굴에는 적합하지 않고 넓은 얼굴에 적합하다. 따라서 남성을 촬영하거나 로우키(low-key)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주로 사용하고 있다.
6. 배경지 (Background)
배경지의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High-key(white), Medium-key(gray), 그리고 Low-key(black)의 3가지 배경지를 사용했다. High-key와 Medium-key의 배경지에는 Loop 조명을 1:4의 조명 비율로 촬영했으며, Low-key의 배경지에는 Rembrandt 조명을 1:8의 조명 비율로 촬영했다. 촬영 결과, 디지털 이미지는 순백색과 순흑색 부분의 디테일을 잃기 쉬우므로 인물의 옷의 디테일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7. Outdoor Portraiture
야외에서 인물을 촬영하는 것은 다양한 조명 상황으로 인해 실내에서 촬영하는 것 보다 조금은 조명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인 태양광과 반사되어 생기는 빛을 적절한 조절을 통해 충분히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조명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태양광으로 인한 조명을 더하거나 줄여주면서 조절한다. 빛을 줄여주는(subtractive) 조명 조절법은 검정색 두꺼운 종이, 나무, 그리고 벽과 같은 것을 이용해 빛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빛을 더해주는(additive) 조명 조절법은 반사판, 전자 플래시, 그리고 주변의 반사된 빛으로 인해 피사체에 빛을 더해주는 조절 방법이다. 그러나 태양광이 아주 밝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이 실내 촬영처럼 쉽지는 않다. 따라서 인물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구름이 약간 있는 흐린 날씨와 같은 태양광이 확산된 상황 아래에서 촬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필자는 야외에서의 실험을 위해 빛을 줄여주는 조명 조절법으로 대형 확산판을 사용했으며, 빛을 더해주는 조명 조절법으로는 은색과 금색의 반사판과 전자 플래시를 사용했다. 실험 결과, 필자는 이러한 조명 조절 방법들이 은염 사진과 같이 효과적으로 강한 콘트라스트를 줄여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 : 정성원 대표 / 제이미스튜디오
'카메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리 카르티에 - 브레쏭, 혹은 완벽한 우연의 순간들 (0) | 2007.03.27 |
---|---|
사진은 누가 발명했는가?-2 (0) | 2007.03.24 |